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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온주아문및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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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온주아문및동헌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온주아문및동헌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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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주아문및동헌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9019.jpg?400|온주아문및동헌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3년 12월 26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 
 +| **시대** | 조선시대 후기 | 
 +| **소유** | 아산시 |
 +| **관리** | 아산시 |
 +|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읍내동 817번지 아문159-6, 동헌 159-2 | 
 +
 +===== 소개 =====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건물로, 아문과 동헌이 있다.
 +
 + 아문은 조선 고종 8년(1871)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는 현판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온양군의 이름이 온주였던 것을 따서 붙인 듯하다.
 +
 +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아문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의 문루건물이다. 아래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윗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1.5m 높이의 사각뿔 모양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4면에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이다.
 +
 + 동헌은 아문에서 북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다. 아문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으며, 조선시대에 온양군의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부터 주재소로 쓰였다.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쓰이다가 1986년 시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동사무소로 쓰였다. 그 후 1993년에 수리·복원되었다.
 +
 + 규모는 앞면 6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아문과 같은 팔작지붕이다. 『여지도서』「온양군 공해조」에는 동헌 10칸·아사 23칸·객사 37칸·무학당 3칸·향청 12칸 등 건물 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으나, 여러 차례 변형된 결과 지금은 2동의 건물만 남아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