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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온정개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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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온정개건비 [2025/04/01 06:00]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온정개건비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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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정개건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5001.jpg?400|온정개건비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72년 06월 26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부산광역시 |
 +| **관리** | 부산광역시 동래구 |
 +| **소재지** | 부산 동래구 금강로124번길 23-17 (온천동) | 
 +
 +===== 소개 =====
 +이 비석은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가 온정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1766년(영조 42)에 세웠는데, 송광적(宋光迪)이 썼다.
 +
 + 동래온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의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 산천조 온정란에 보면, 동래온천은 신라시대부터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온천의 물이 계란을 익힐 만큼 뜨거웠으며, 병자가 목욕을 하면 병이 잘 나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
 + 비는 높이 144cm, 폭 61cm이다. 비문에 따르면, 1691년(숙종 17)에 고쳐 세운 온정은 ‘돌로 두 개의 탕을 만들었는데, 그 후 건물이 낡아 탕이 막힌 것을 새로 동래부사로 부임한 강필리가 다시 고쳐 짓고, 남탕과 여탕을 구획한 9칸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상쾌하고 화려하여 마치 꿩이 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후에도 이 온정은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한다.
 +
 + 1878년에 처음으로 일본인의 전용 목욕탕이 생겼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이 온천장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한국인은 이권을 박탈당하고 지내야만 했다. 지금은 온천동 용각(龍閣) 내에 보존되어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