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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영주_순흥_어숙묘 [2025/04/01 05:57] – 만듦 sh | 대한민국:국가유산:영주_순흥_어숙묘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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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주 순흥 어숙묘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836.jpg?400|영주 순흥 어숙묘 }} || |
| | | **종목** | 사적 (1974년 12월 06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
| | | **시대** | 신라시대 | |
| | | **소유** | 창원황씨봉례공파문중 | |
| | | **관리** | 영주시 | |
| | | **소재지** | 경북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산95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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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비봉산 서남 남사면에 있는 신라의 벽화무덤으로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지름은 16m이며 파손이 심하여 높이는 확인할 수 없다. 봉토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는 널방(현실)과 널길(연도)이 있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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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의 4곳의 벽과 천장 표면에는 석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으며, 바닥에는 널을 올려놓는 넓은 널받침을 설치하였다. 서쪽 벽 위에는 도굴로 인해 흙이 밑에 쌓여 있었고, 유물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널방은 돌로 문짝을 세워 닫았으며, 널길 입구에는 막돌을 쌓아 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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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은 무덤 전반에 걸쳐 그려졌으나 자연적인 습기 등으로 파괴되고 널길천장과 문짝에만 벽화가 남아있는데 모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천장에는 대형 연꽃무늬 1개가 그려져 있는데 붉은색 한가지로만 연꽃을 그린 것이 특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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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로 만든 문짝의 바깥쪽에는 인물상으로 보이는 그림이 전면에 그려 있으나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며, 문짝의 안쪽에는 ‘을묘년어숙지술간’이란 글을 새겼다. 을묘년은 연꽃무늬로 보아 법흥왕 불교 공인 이후인 6세기말의 진평왕 17년(595)년으로 추정되며, 어숙은 사람 이름으로 고구려계이다. 술간은 신라의 관직명으로 6세기경 이 지방이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지역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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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흥 벽화무덤과 함께 신라 영역에서 발견된 벽화무덤이라는 점과 이름이 있는 신라 유일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연꽃무늬와 어숙이라는 사람 이름이 고구려계로 추측되어, 이 지역이 고구려와 신라의 통로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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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b>※(순흥어숙묘 → 영주 순흥 어숙묘)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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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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