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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조대왕의_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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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조대왕의 도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imp_folklore_material/1633538.jpg?400|영조대왕의 도포 }}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1987년 11월 23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복식공예 / 의복 | 
 +| **시대** | 1740년 | 
 +| **소유** | 파계사 |
 +| **관리** | 파계사 |
 +| **소재지** | 대구 동구 파계로 741, 파계사 (중대동) | 
 +
 +===== 소개 =====
 +영조대왕의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圓通殿)의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다가 발견되었다. 도포와 함께 발견된 한자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 16년(건륭 5,1740) 9월 파계사 대법당을 수리하고 영조가 탱화 일천불을 희사하면서 이 곳을 왕실을 위해 기도하는 도량으로 삼고 영조의 청사상의(靑紗上衣)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도포는 조선시대에 왕을 비롯하여 사대부의 외출복으로 입혀졌던 옷으로 기록이나 유물은 16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형태는 곧은 깃에 넓은 소매(廣袖)가 달린 것으로 뒷자락이 2중구조로 된 특징이 있다. 길에서 내려오는 기존의 뒷자락이 있으며 앞의 무가 뒷자락 안에 붙어 있어 뒷자락이 2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18세기 풍속화 중 도포를 착용한 모습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뒷자락 모습을 볼 수 있다. 
 +
 +영조의 도포는 무늬 없는 사(紗:[은조사])로 된 홑옷으로 현재의 색상은 연한 녹색빛을 보인다. 소매는 넓은 두리 소매이며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합쳐진 반당코깃(반목판깃)이다. 일반인의 도포가 곧은깃(직령깃)인데 반하여 반목판깃의 형태여서 서민과 왕족이 사용한 도포의 양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
 +영조대왕의 도포는 전세 유물 도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면서 왕이 착용하였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자료로 형태와 색이 비교적 완전하여 복식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