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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암_월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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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암_월산사지 [2025/04/01 05:54]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영암_월산사지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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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암 월산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18101715540600.JPG?400|영암 월산사지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7년 09월 0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시대** |  | 
 +| **소유** | 월산사 |
 +| **관리** | 월산사 |
 +|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617-2 | 
 +
 +===== 소개 =====
 +영암 월산사지는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건물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건물지와 월산대군과 인수왕비 등 왕실 후원자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 왕실을 기반으로 한 ① 사찰중창의 배경, ② 사찰 조영의 계획, ③ 조성과정 등을 밝힐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
 +월산사지는 세차례 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10동과 부석시설, 석축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초기 월산대군과 관련된 유물의 출토와 관련 기록은 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 
 +
 +발굴(시굴)조사는 세차례에 걸쳐 실시하였는데, 1차는 사지의 윗 부분, 2차와 3차는 사지의 아랫 부분을 대상으로 하였다. 2차 조사는 시굴조사한 지역(500㎡)을 대상으로 3차 발굴조사를 하였다. 
 +
 +1차 발굴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1동, 부석시설, 석축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주변에 더 많은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중심 건물지로 판단되는 부분과 사찰의 규모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지표상에서 확인된 사찰의 규모는 남북 폭이 34m, 동서폭이 48m 범위이다.
 +
 +중심건물지는 조선초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측면이 약 660㎝, 정면 980㎝로 측면 좌우 협칸이 좁은 장방형이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해 본 결과 15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월산대군과 관련한 불사로 번창한 사찰로 판단된다. 또한 중심건물지 하부는 고려시대 문화층이 노출되어 와편과 청자편이 출토되고 있어 차후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 
 +
 + 월산사지 중심 건물지 조성 당시 월출산 일대는 세조의 왕사인 수미대사가 국가의 지원 속에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도갑사, 무위사 등이 번창하였음을 자료로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건물지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중, ‘수빈궁’, ‘월산군’, ‘을유’, ‘정유’명 등을 통해 15세기 중후반대인 세조~연산군년간에 불사가 이루어져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