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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중화사_목조여래좌상_및_목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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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중화사_목조여래좌상_및_목조보살좌상 [2025/04/02 04:55]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중화사_목조여래좌상_및_목조보살좌상 [2025/04/02 04:55]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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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동 중화사 목조여래좌상 및 목조보살좌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8921.jpg?400|영동 중화사 목조여래좌상 및 목조보살좌상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8년 04월 11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 
 +| **시대** | 숙종 12년 | 
 +| **소유** | 대*** |
 +| **관리** | 대*** |
 +| **소재지** | 영동읍 화신리 32-1번지 | 
 +
 +===== 소개 =====
 +중화사는 1960년에 간행된 『영동군지』에 의하면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고려시대에 보각국사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서산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정유재란(1597년) 당시 소실되었던 것을 숙종 3년(1677)에 대웅전 등을 중수하였고, 정조 21년(1797)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순종 융희 2년(1908)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
 +목조여래좌상은 중앙에 모셔진 본존상으로 나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나발은 또렷하게 조성하였다. 원만한 상호에는 이마에 백호가 양각되고 양, 미·안, 비량, 구순 등 각부가 정제되었다.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돌려진 삼도와 잘 어울리어 근엄하면서도 인자함을 느끼게 한다.
 +
 +법의는 통견하였는데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두툼한 옷깃은 오른쪽 팔굽 밑으로 하여 오른쪽 어깨를 덮고 있는 의문과 연결되었다.
 +
 +수인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놓아 촉지인을 취한 듯 하고 왼쪽 손은 왼쪽 허리부분에서 상장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
 +최근에 불상들을 개금 봉안하였는데 이 여래좌상에서 두 가지의 발원연기가 발견되어 주목된다. 그 중 하나는 1928년(소화3년)의 묵기로 (크기 44.5cm×51 cm) 「개금불상」이라 제하여 이때에 개금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또 하나는(크기 23cm×495cm) 주불 석가여래, 좌보 미륵보살, 우보 제화갈라보살, 관음불, 이 4존에 대한 조성관계자들 및 시주자들의 성명을 적고 있다.
 +
 +이 목조여래좌상은 발원문 내용에 따라 강희25년 병인 즉 조선 제19대 숙종12년(1686)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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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측치 (cm) : 全高 94, 頭高 33, 肩幅 37, 胸幅 24, 膝幅 57, 膝高 16. 腹藏孔 24×14이다.
 +
 +대웅전 삼존상의 왼쪽에 배치되어 있는 보살좌상은 머리에 금속제의 보관을 썼는데 각종의 화문과 화염문 등을 장식하여 화려하기 이를 데 없으며 뒤편에까지도 높직하게 보주형 관면을 이루고 있다. 흑발의 보발은 곱게 빗어 관대 밑으로 질서 있게 표현하였으며 양쪽 관대 밑으로 길게 보발이 흘러 이타를 휘감고 어깨 위에서 두 가닥으로 갈렸다.
 +
 +원만한 상호는 이마에 백호가 양각되고 양 미·안, 비량, 구순 등 각부가 정제되었다.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삼도의 표현이 있어 원만한 상호와 잘 어울리어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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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는 통견이며 양쪽 어깨에서 널찍한 옷깃이 내려져 제전에서 큼직한 원호를 이루었다. 양쪽 팔에 걸친 의문은 밖으로 흘러내려 동체를 감싸고 있다.
 +
 +수인은 오른쪽 손을 약간 들어 상장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쪽 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반외장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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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보살좌상은 여래좌상과 함께 최근에 개금 봉안하였는 데 여래좌상과 같은 내용의 발원문이 발견되었다.(크기 22cm×48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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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측치(cm) : 全高 89, 頭高 45, 肩幅 20, 胸幅 23, 膝幅 50, 膝高 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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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조여래좌상과 목조보살좌상은 조성연대를 알려 주는 복장 묵기(복장 묵기)가 있어 절대연대가 확실하며 개금(개금)의 과정과 본래의 소속 사원 등과 같은 연혁이 확실하여 동시기의 불상 제작편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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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우고(범우고)』,『가람고(가람고)』, 『태고사법(태고사법)』,『여지도서(여지도서)』등의 기록이 전하여 존상의 형태가 완전한 것은 물론 각 부의 조각양식이 정제되어 있어 17세기 불상 양식을 규명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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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