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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고당리_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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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동 고당리 서당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0790.jpg?400|영동 고당리 서당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4년 07월 3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 
 +| **시대** | 1800년대 말 추정 | 
 +| **소유** | 날*** |
 +| **관리** | 날*** |
 +|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111번지 | 
 +
 +===== 소개 =====
 +이 건물은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흥학당(興學堂) 번택명록(飜宅名錄)과 단양이씨(丹陽李氏) 춘천부사공파보(春川府使公派譜)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마을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1800년대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기와 제작 수법과 기술이 뛰어나고, 툇마루 청판은 고식기법(古式技法)으로 조선시대의 치목기법(治木技法)이 나타나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아울러 건축 가구법(架構法)이 축조 당시의 목조기술(木造技術)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일부의 변형 즉 반자의 설치, 후면 툇마루 철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 건축사 편년상(編年上)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건축형식이 서당성격과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어 서당 건축 자료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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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면구성은 동측으로부터 벽장용도의 1칸의 다락방과 2칸의 온돌방, 1칸의 대청의 순으로 구성되며, 전면으로는 반 칸 정도의 폭으로 툇마루를 두고 온돌방 앞으로는 머름을 설치한 띠살창호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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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구조는 얕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납도리집으로 구성하였다. 가구형식(架構形式)은 3량가(樑家)이며, 마루의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온돌방 천장은 반자가 설치되어 있다.
 +
 + 건축 기술사적 가치를 제하고도 구한말 교육기관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한학과 예의범절 그리고 우리의 민족정신을 일깨워주던 곳으로 그 가치 또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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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곳 고당3리(날근이)는 신도로(대전-영동간 국도)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나룻터가 있어서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단양이씨 동족(同族) 마을로 이 마을은 물론 인근 마을까지 교육을 맡아왔던 건물이다.
 +
 + 저명한 학자의 배출기록은 미약하나 민초(民草)들의 근대 교육을 담당하였고 흥학당 번택명록의 기록을 보면 많은 사람이 이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모았으며 이 마을 주민이 문화유산을 소중히 아끼어 건물이 유지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
 + 영동 고당리서당은 120여년 전에 지어진 건물로 해방 이전까지 한학(漢學)을 학습시키던 순수 서당으로서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가구법, 건축수법, 원형의 보존 등 교육적,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고 서당의 희소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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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