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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어사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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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어사대비 [2025/04/02 04:47]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어사대비 [2025/04/02 04:47]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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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사대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7471.jpg?400|어사대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8년 11월 10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양주시 |
 +| **관리** | 양주시 |
 +| **소재지** | 경기 양주시 유양동 산33-102번지 | 
 +
 +===== 소개 =====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가 활을 쏘던 장소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어사대비’란 ‘임금이 활을 쏘던 장소에 세운 비석’이라는 의미이다. 1792년(정조 16) 정조는 광릉(光陵; 세조의 왕릉)에 행차하던 길에 양주(楊州) 관아(官衙)가 있던 유양리(維楊里)에서 3일간 머물렀다. 이때 백성을 위로하고 민정을 살폈으며 근교의 사대(射臺)에서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쏜 뒤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양주목사(楊州牧使)가 같은 해에 어사대비를 세운 것이다.
 +
 +거북이 모습의 받침돌에 위가 둥근 비신(碑身; 글씨를 새기는 부분)을 세웠다. 앞면에는 큰 글씨로 ‘어사대’라고 썼다. 뒷면의 비문에는 ‘정조가 활을 쏜 사실과 더불어 친히 지은 시와 환궁 후 내린 말씀을 관아의 오른쪽 벽에 걸어 두었다고 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읍지(邑誌)에도 기록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주목사 이민채(李敏采)가 직접 비문을 짓고 글씨도 썼다. 한국 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으로 인해 현재 비신 앞면의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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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