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양평_보리사지_대경대사탑비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양평_보리사지_대경대사탑비 [2025/04/01 05:55]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양평_보리사지_대경대사탑비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299.jpg?400|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 ||
 +| **종목** |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고려시대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
 +===== 소개 =====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탑비로, 보리사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
 + 대경대사는 9세에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禪)을 연구하였다.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는 그를 존중하여 보리사의 주지로 머물게 하였다. 69세에 이 절에서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대경’, 탑 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
 + 비는 여의주를 물고 일어선 납작한 돌거북 받침과, 거대한 비머리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균형을 잃고 있다. 그러나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
 +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대사의 제자인 최문윤이 글씨를 새겼다. 글씨에는 획의 모서리를 날카롭게 살린데서 오는 강인함이 묻어나는데, 고려 전기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는 부분이다.
 +
 +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태조 22년(939)으로,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