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 양쪽 이전 판이전 판 | |
| 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_선각왕사비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_선각왕사비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
|---|
| |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5735.jpg?400|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 || |
| | | **종목** | 보물 (1963년 09월 02일 지정) | |
|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 | | **시대** | 고려시대 | |
| | | **소유** | 회암사 | |
| | | **관리** | 회암사 | |
| | | **소재지** |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번지 회암사(귀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불교중앙박물관(비신) | |
| | |
| | ===== 소개 ===== |
| | 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 고려말의 승려인 나옹(懶翁)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나옹(1320∼1376)은 1344년에 회암사로 들어가 불교에 입문하였다. 1358년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 등에서 은거하다가 회암사로 다시 돌아와 절을 크게 새로 지어올렸다. 신륵사에서 57세로 입적할 때까지 불법만을 행하였으며, 입적한 후 시호를 ‘선각’이라 하고 그 이듬해에 비를 세웠다. |
| | |
| | 비의 모습은 당나라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으로, 비의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았다. 즉 비의 몸돌 윗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긴 후 그 중앙에 비명칭을 새기는 공간을 두었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큰 돌을 단순한 조각기법으로 새겨 다소 추상적으로 다루어 놓았으나, 비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정갈하면서도 역동적이다. |
| | |
| | 비문의 글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쓴 것으로,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비의 글씨는 예서체로서,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와 중원고구려비 이후 고려말에 와서 처음이다. 이는 당시의 예서 연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한 예이다. |
| | |
| | 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보존처리를 실시한 후 보존관리상 2001년도에 경기도박물관에 위탁 보관하고 있다. 비가 있었던 원래의 자리에는 비 받침돌인 귀부가 그대로 있으며, 원형을 본따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
| | |
| | {{tag>국가유산 문화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