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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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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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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회암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5461.jpg?400|양주 회암사지 }} ||
 +| **종목** | 사적 (1964년 06월 1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시대** | 고려 충숙왕<재>15년(1347) | 
 +| **소유** | 양주시 등 |
 +| **관리** | 양주시 |
 +| **소재지** |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14번지 | 
 +
 +===== 소개 =====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
 +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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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를 비롯하여,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유산)·회암사지부도(보물)·나옹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유산)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무학대사비(경기도유형유산)·회암사지부도탑(경기도유형유산)·어사대비(경기도유형문화유산)·맷돌(경기도민속문화유산)과 당간지주,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있다.
 +
 + 이 사찰은 평지가 아닌 산간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수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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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회암사지 → 양주 회암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