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양산_통도사_청동_은입사_향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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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양산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2011년 12월 23일 지정) | | ||
| + | |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 공양구 / 공양구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통도사 | | ||
| + | | **관리** | 통도사 | | ||
| + | |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로 108 (하북면, 통도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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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고배형 향완이란 구연이 밖으로 벌어져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아래로 가면서 나팔형으로 벌어진 받침으로 구성된 형식으로서 대부분이 몸체와 다리 부분을 따로 주조하여 결합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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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한 향로는 명문에 보이듯 특별히 ‘향완’이라 명칭하고 기록하였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향로의 표면에는 범자(梵字)를 비롯하여 보상당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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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형적인 고려 향완에서는 원형 여의두곽(如意頭廓) 안에 범자문(梵字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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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부 받침 아래 붙은 다리는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퍼지다가 끝단으로 가면서 1단의 둥근 몰딩과 그 아래로 둥근 받침을 형성한 모습이다. 다리의 상부면은 긴 종선으로 구획하여 그 내부 연잎마다 꽃술 장식이 첨가된 이 첨가된 복련(覆蓮) 형식의 연판문을 주회시켰다. 이 아래로 다리의 넓은 전면을 돌아가며 쌍구체의 연화당초문이 굴곡진 줄기와 함께 유려하게 시문되었다. 다리 아래 단 몰딩 부분에도 몸체의 전부 상면에 표현된 당초문과 동일한 형태의 쌍구체의 당초문이 전면을 돌아가며 시문되었다. 2단의 몰딩 부위 가운데 아래부분에는 여의두문이 첨가되었다. 이처럼 이 향완은 기본적인 외형과 은입사, 세부 문양에서 고려 후기 향완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깥으로 벌어진 구연 전부의 밑부분에는 ‘시주가선대부호조정인언 자○○ 정광후 정방사 시납 통도사(施主嘉善大夫戶曹鄭仁彦 子○○ 鄭光厚 淨房寺 施納 通度寺)’라는 연점각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목되는데 시주자 이름과 정방사, 그리고 시납 통도사 명문이 확인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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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명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시납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향완에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와서 별도의 시주자 명단을 다시 추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이 향완의 기록된 명문을 원래의 명문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 제작연대는 14세기 중엽에서 후반 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국립박물관 소장 청곡사(靑谷寺) 향완(1397)과 비교해 보아도 그와는 다른 고려적인 요소가 대부분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전기의 향완이라고 알려져 왔던 지금까지의 견해와 달리 이 통도사 소장 향완은 앞서와 같은 고려 후기 향완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으로 새롭게 파악될 수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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