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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안중근의사_유묵_-_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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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안중근의사_유묵_-_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안중근의사_유묵_-_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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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의사 유묵 -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502.jpg?400|안중근의사 유묵 -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 ||
 +| **종목** | 보물 (1991년 07월 12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 
 +| **시대** | 1910년 3월 | 
 +| **소유** | 단국대학교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단국대학교박물관|단국대학교박물관]] |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석주선기념박물관 (죽전동,현대홈타운4차3단지) | 
 +
 +===== 소개 =====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安重根義士遺墨-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은 러일전쟁(露日戰爭) 당시 전의(典醫:대한제국 때 태의원에 딸린 주임의 벼슬. 네 명이 있었음)로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만주 여순 감옥으로 전근되어 근무하던 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1910년 3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친필을 옥중에서 받아 간직해오던 것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인 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으며 이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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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유묵에는 “동양을 보존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침략정책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라는 내용을 담아, 일본 정책의 잘못을 고칠 것을 촉구하였으며, 일본인 집정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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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중국 안위성 선성현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우수한 선지(宣紙)에 2행 16자를 쓰고, 그 왼쪽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쓰다(安重根書)”라고 묵으로 쓴 글씨와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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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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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略 時過失機追悔何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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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라. 때를 놓치고 기회를 잃은후 후회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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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