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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안중근의사_유묵_-_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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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의사 유묵 -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506.jpg?400|안중근의사 유묵 -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 ||
 +| **종목** | 보물 (2003년 04월 1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 
 +| **시대** | 1910년 | 
 +| **소유** | 안중근의사숭모회 |
 +| **관리** |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30 (탄현면, 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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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安重根義士遺墨-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 중의 하나로 그의 서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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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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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유묵에는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도탑고 삼가함이 있으면 야만의 나라에서도 도를 실행할 수 있다)라 큰 글자로 쓰고, 왼쪽에 작은 글자로 ‘경술삼월(庚戌三月)에 여순옥중에서(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쓰다(安重根書)’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왼쪽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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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의 규격은 가로 34.1㎝·세로 137.0㎝로, 4매의 종이가 연접되었다. 왼쪽 손도장은 손금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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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여순감옥의 일본인 경찰이 보관해오다가 그의 손자 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 다이헤이요 산업주식회사 회장)가 2002년 10월 안중근의사숭모회측에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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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