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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안동상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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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상봉정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19062010200600.jpg?400|안동상봉정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9년 11월 23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 **시대** |  | 
 +| **소유** | 문중 |
 +| **관리** | 류상붕 |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일로 220 (풍천면, 상봉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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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이 건물은 회당 류세철(悔堂 柳世哲, 1627~1681)이 종증조부 류성룡이 평소 노닐면서 이름을 붙인 상봉대(翔鳳臺)에 만년을 보내기 위해 1670년(현종 11) 건립한 정자로서, 1696년(숙종 22)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1705년(숙종 31) 중건된 뒤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친 다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봉정(翔鳳亭)은 류성룡이 이곳 절벽을 상봉대(翔鳳臺)라고 부른데서 따온 이름이다. 이 정자는 류세철이 의례소 사건으로 서인세력에 의해 유벌(儒罰)에 처해진 뒤 건립한 것으로, 서인정권에 대응한 남인유생의 공론을 결집하는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가 소두가 된 의례소는 그의 재종숙부이자 스승인 류원지가 대찬(代撰)한 것으로 남인예설의 결정판으로 평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효종 원년(1650) 유직을 소두로 한 영남 유생 9백여 명의 우율 문묘종사 반대상소와 더불어 조선후기 남인세력의 대표적 공론형성의 사례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정자는 남인의 예론을 결집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건물의 구조 양식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서애의 얼이 서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일 뿐 아니라 하회 16경 중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안산인 원지산 쪽의 초점 경관을 이루고 있는 장소성이 강한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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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