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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신안_우이도_유암총서와_운곡잡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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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안 우이도 유암총서와 운곡잡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2335.jpg?400|신안 우이도 유암총서와 운곡잡저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0년 05월 27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전적류 / 전적류 | 
 +| **시대** |  | 
 +| **소유** | 신안군 |
 +| **관리** | 신안군 |
 +|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진리길 47-4 (도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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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유암총서(柳菴叢書)』,『운곡잡저(雲谷雜櫡)』는 이강회(李綱會; 1789~?)가 신안 우이도에 칩거하면서 자신의 글과 스승인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글을 한데 묶어 놓은 문집의 초고본에 해당한다.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정약전의 저서 「표해시말(漂海始末)」(유암총서 수록)․「송정사의(松政私議)」(운곡잡저 일권에 수록)가 담겨져 있으며, 정약용의 속담 한역(俗談漢譯) 저술인 「백언시(百諺詩)」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된 「이담속찬(耳談續纂)」의 초고본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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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해시말』에는 우이도 어부 문순득 일행이 유구를 비롯하여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던 필리핀과 포르투칼의 거류지였던 마카오를 경험한 내용이 담겨있는 데, 현재 발견된 국내 표류기록 가운데 이 지역과 관련된 유일한 자료이다. 그중에서도 여송(필리핀)에 대한 내용이 매우 상세한데, 여송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표류기는 이 문헌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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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해시말」의 주인공 문순득(文淳得; 1777~1847)은 우이도에서 살던 중 1801년(순조 1) 12월 출항하여 , 이듬해인 1802년 1월 18일 태사도(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중 표류하게 되었다. 1월 29일 유구(琉球; 현 오끼나와)에 도착하여 8개월간 체류하다가 10월 출항하였으나 다시 표류하여 여송(呂宋; 현 필리핀)에 당도하여 8개월간 머물렀다. 그 후 중국 오문(마카오), 광동, 북경과 의주를 거쳐 한양에 도착하였고, 고향 우이도에는 1805년 1월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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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순득의 표류행적은 당시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에게 표류과정과 유구와 여송 지역의 풍속, 가옥, 언어, 의복, 선박, 토산품 등의 내용을 구술하여 기록되었다가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의 문집 『유암총서』에 필사되어 현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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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암총서』와 『운곡잡저』는 그 동안 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강회의 실학사상이 담긴 저술들이 다수 수록되어 주목된다. 특히 수레와 선박의 운용과 제작을 주장한 이강회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상적 입장 조선후기 이용후생학의 흐름을 밝히는 새로운 자료가 된다. 그 동안 중앙학계의 학자들 중심으로 전개되던 실학이 정약용을 거쳐 지방으로 확산된 사례를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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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암총서』와 『운곡잡저』는 다산 정약용을 통해 북학파의 영향을 받은 지방학자 이강회가 유배인의 높은 학문과 표류인을 통해 외국문물을 접할 수 있는 우이도에 머물면서 실학정신에 입각하여 남긴 저서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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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