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순천_선암사_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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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순천 선암사 일주문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2022년 12월 28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문 | |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 | **소유** | 선암사 | | ||
| + | | **관리** | 선암사 | | ||
| + |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길 450 (승주읍, 선암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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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순천 선암사 일주문」이 위치한 선암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조계문으로도 불리는 일주문에 대한 기록은 1540년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 일주문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뒤쪽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 현판이 걸려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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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759년 화재 이후 선암사에서 해천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23년 다시 선암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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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선암사 일주문은 단칸 맞배지붕과 주상포, 주간포의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축부(軸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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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부 의장은 특별하게 장치한 것은 없으나 2001년에 주기둥 내측 상부에 용두(龍頭)를 추가 한 것을 들 수 있다. 일주문 내부에 용두로 장엄을 베푼 예는 대구 동화사 일주문과 장흥의 보림사 일주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사찰은 천장에서 용두가 내려와 있어 선암사의 용두를 기둥에 거는 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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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천 선암사 일주문은 초창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확인된 중창 이후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피해 유일하게 소실을 면한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물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그 역사적ㆍ학술적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주문 형식에서 양팔보형은 순천 선암사 일주문과 북한의 안변 보현사 일주문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2개의 사례가 존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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