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수옹송갑조신도비_및_후기비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수옹송갑조신도비_및_후기비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수옹송갑조신도비_및_후기비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수옹송갑조신도비 및 후기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21080217305100.jpg?400|수옹송갑조신도비 및 후기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21년 07월 19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은*** |
 +| **관리** | 은***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동구 | 
 +
 +===== 소개 =====
 +수옹 송갑조(睡翁 宋甲祚)의 신도비와 후기비이다. 송갑조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유(元裕), 호는 수옹(睡翁)이다. 참봉 송세량(宋世良)의 증손,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이고, 아버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송응기(宋應期)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윤경(李潤慶)의 딸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이며, 최립(崔岦)의 문인이었다.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신도비는 17세기에 입비되었으며 비문의 찬자(撰者)는 3남 송시열(宋時烈 : 1607~1689), 서자(書者)는 종제(宗弟) 송준길(宋浚吉 : 1606~1672), 두전(頭篆)은 김수항(金壽恒 : 1629~1689)이 하였다. 형태적으로 가첨석은 방형의 판석과 간략화 된 와가형의 가첨석이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비대는 조각이 없이 방형의 화강석을 치석하여 사용하였다. 비대의 우측 상면에는 석재 가공시 절단을 위한 쐐기를 박았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암혈(巖穴) 있다. 
 +
 +후기비는 18세기에 입비된 것으로 신도비가 세워지고 난 후 영조 병오년(1726, 영조 2)에 수옹이 ‘경헌(景獻)’이라고 사시(賜諡)를 받은 사실과 ‘영의정’으로 추증된 것을 기록하여 추가로 세워졌다. 오석으로 된 비신의 전면대자(大字) 부분은 일부가 박락되어 찬자와 서자의 확인은 어렵다. 다만 이의현의 문집인 『도곡집(陶谷集)』의 기록으로 찬자가 이의현임을 알 수 있다. 형태적으로 가첨석은 와가형으로 지붕의 추녀, 마루 등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비대는 일반적인 묘표 등에 비하여 큰 편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공들여 새겨져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