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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송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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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송산사지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송산사지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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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산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6063.jpg?400|송산사지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77년 10월 13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 
 +| **소유** | 의*** |
 +| **관리** | 삼*** |
 +| **소재지** |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로 296 (민락동, 송산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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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송산사지’는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끝까지 지키다가 죽은 영혼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 터이다. 이곳은 고려 말의 충신 여섯[조견(趙狷), 원선(元宣), 이중인(李中仁), 김양남(金揚南), 유천(兪蕆), 김주(金澍)] 사람 등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들은 새 왕조인 조선의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피해 숨어서 살다가 여생을 마친 사람들이다. 1798년에 사당을 짓고 ‘삼귀서사(三歸書祠)’라 하였는데 1804년에 ‘송산사(松山祠)’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이후 고종의 서원철폐(書院撤廢; 1871년 전국의 47개소 서원(사우 포함)만 남기고 모두 없앰)령으로 건물이 헐려 없어졌다가, 이후 송산사 옛터에 위패만 모셔진 단이 마련되었는데 이를 ‘삼귀단(三歸壇)’이라 이름 지었다. 1995년에 송산사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를 하였는데, 사당 터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는 고려의 서울이었던 개성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송산사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사람 인)’자 형태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사당 앞에는 3칸으로 구성된 솟을삼문(솟을三門 ; 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이 있고, 문 앞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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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