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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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 [2025/04/02 04:51]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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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3년 12월 30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문서류 / 문서류 | | ||
| + | | **시대** | 1805년(순조5년) | | ||
| + | | **소유** | 서울특별시 | | ||
| + | | **관리** | |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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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이 문건(文件)은 오늘날 서울에 편입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도성 밖에 있던 성북동(城北洞)에 둔진(屯鎭)을 처음으로 설치하고 둔진(屯鎭)의 주민에게 포역(曝役)․훈업(燻業)을 맡게 한 사실을 밝힌 비변사의 문안(文案)과 훈련도감의 문적(文蹟)을 1805년(純祖 5년) 6월 재작성하여 발급한 완문(完文)과 그 세부사항이 기록된 절목(節目)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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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문서는 장지(壯紙)에 필사(筆寫)하여 책 형태로 꾸몄고, 각 면과 각 장 사이 22곳에 관인(官印)을 찍었는데 인문(印文)은 미상이다. 문서 끝에 “대장(大將)(手決)”이라 쓰여 있어 발급자는 훈련도감 대장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뒤 본래임무인 군사 훈련 외에 수도방위와 국왕호위를 맡게 되었고, 조선후기에는 5군영(五軍營)의 하나로 어영청(御營廳)․금위영(禁衛營)과 함께 수도를 방위했다. 관원은 대장(大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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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문건은 조선 후기 성북동(城北洞)에 설치한 포백계(曝白契)와 훈조계(燻造契)에서 이루어진 포백(曝白)과 훈조(燻造)의 제조, 납품, 임금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18세기 후반~19세기 초 도성 근처 성북동에 둔진(屯鎭)을 설치하는 과정과 성북동 일대 거주민의 생활의 일면 및 산업의 실태 등을 파악하는데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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