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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선조국문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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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국문유서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22838.jpg?400|선조국문유서 }} ||
 +| **종목** | 보물 (1988년 06월 16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 **시대** | 조선 선조 26년(1593) | 
 +| **소유** | 안동권씨판결공파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김해한글박물관|김해한글박물관]] |
 +|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 221 (외동, 김해한글박물관) | 
 +
 +===== 소개 =====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으로 임금이 피난하여 의주에 있을 적에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로 쓴 교서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왜적에 협조하는 자가 많았다. 그 때문에 선조는 일반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한글로 쓴 교서를 내려 포로가 된 백성을 회유하여 돌아오게 하였다.
 +
 + 이것은 선조가 한양으로 다시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내려진 것인데,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1544∼1593)은 이 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몰래 들어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 명을 구해 나왔다. 그 후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 집에서 보관하다가 도둑을 맞고 다시 찾은 것이다.
 +
 + 어쩔수 없이 왜인에게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과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정보를 알아오는 사람, 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많이 데리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천민, 양민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
 +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과 한글로 쓰여진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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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