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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_권4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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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_권4_7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_권4_7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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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 권4~7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3309.jpg?400|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 권4~7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3년 07월 02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찰본 | 
 +| **시대** | 1443년 | 
 +| **소유** | 선덕사 |
 +| **관리** | 선덕사 |
 +|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1 영원사 | 
 +
 +===== 소개 =====
 +영실 영원사 오백나한전에 소장되어 있는 「선덕사 소장 화암사판 묘법연화경」의 판본은 전 7권 2책 중에 권1~3의 1책이 결본으로, 권4~7의 1책만이 해당된다. 
 +
 +이 책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조부인 성달생(권 1·7)과 임효인(권2~4)· 조 절(권5~6)등이 1432~1435년까지 4년 동안 글씨를 썼으며 1435~1442년 까지 8년여 동안 화암사에서 판각하였다. 
 +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권1의 책 처음 쪽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3.7cm, 세로 21cm로 되어 있다. 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20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고려본의 영향을 받은 듯 어미는 없고, 단지 판심제인 ‘법法’과 그 밑으로 권차와 장차 표시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판식은 성달생이 쓴 판본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
 +판식상의 특징은 원간본과 일치되며, 다만 부처님 복장에 넣기 위해 전후의 표지가 제거되어 있으나, 오히려 제책상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가 있다. 
 +
 +이는 우리의 옛 책은 일반적으로 5침으로 제책한 것이 통설이나, 선덕사본은 7침으로 꿰매고 겉 표지는 비단으로 장정했던 흔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그리고 선덕사본은 원간본에 보이고 있는 동일한 간기는 보이고 있으나, 성달생 · 성승 · 성삼문의 성명이 삭제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선덕사본은 세조2(1456)년에 발생된 ‘사육신사건’에 성승과 성삼문이 연루되었던 관계로, 사건 이후에 이 부분을 깍아 내고 재차 인쇄했던 사실이 입증되어 성종 년간에 간행된 후인본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
 +본 묘법연화경은 1982년 전 조계종 종정이셨던 고암 대종사께서 선덕사 중창불사 증명법사로 주석하셨을 때 학균화상에게 전수하여 주신 것이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선덕사에 보관되었다가, 2007년 12월 11일 이곳 영실 영원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
 +영실 영원사(靈園寺)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예부터 영실에는 많은 고승 대덕들이 찾아와 존자암·수행굴 등에서 수행 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암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원사는 1980년대 초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신 고암 대종사께서 이곳을 찾아 폐사된 암자터 정비하신 것을, 이후 최용주 거사 내외가 복원하여 설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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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