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선덕사소장갑인자복각묘법연화경_권1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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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선덕사소장갑인자복각묘법연화경 권1~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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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3년 07월 02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찰본 | | ||
| + | | **시대** | 중종년간 | | ||
| + | | **소유** | 선덕사 | | ||
| + | | **관리** | 선덕사 | | ||
| + | | **소재지** | 상효동 1156-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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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우리나라는 고려중기 이후로부터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매우 발달되었던 사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갑인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계미자와 경자자 다음에 세 번째로 세종 16(1434) 갑인년에 구리(銅)를 주성분으로 주조된 금속활자이다. 특히 세종대의 고도의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주조되었던 까닭에 한국활자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활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 활자로 6차례 이상 개주를 거듭하였던 관계로 맨 첫 번째로 주조된 갑인자를 ‘초주갑인자’로 구분하여 이름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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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표방하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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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런데 세종은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왕비를 일찍 여의고, 한편 동궁으로 있던 문종이 병약하여 중병에 이르자, 불경을 간행하여 불력으로 치유코자 하였다. 이에 세종 32(1450)년에 화엄경은 목판으로 인출케 하고, 법화경은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33부를 간행케 하였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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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선덕사 소장 갑인자판 복각 묘법연화경은 전 7권 중에 권1~2의 1책만이 소장되어 있는데,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복장본인 까닭에 전후의 겉 표지는 제거된 상태로 있으며, 권수에는 사문 급남의 ‘요해서’가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권두제면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5cm, 세로 26.5cm로 되어 있다. 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18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갑인자본의 영향을 받아 어미는 상하흑어미가 하향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판심제는 ‘묘법’과 그 밑으로 권수와 장수 표시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인쇄에 사용된 종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불경 인출에 흔히 사용된 지질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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