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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풍납동_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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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풍납동_토성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풍납동_토성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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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풍납동 토성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4451.jpg?400|서울 풍납동 토성 }} ||
 +| **종목** | 사적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시대** | 삼국시대 | 
 +| **소유** | 서울특별시 등 |
 +| **관리** | 서울 송파구 |
 +| **소재지** | 서울 송파구 풍납1동 72-1번지 외 | 
 +
 +===== 소개 =====
 +백제시대 초기(한성백제기) 한강변에 흙으로 쌓은 평지성으로 풍납토성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둘레가 3.5㎞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한강과 맞닿은 서쪽 성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1km정도만 남아있다. 발굴조사에 의해 성벽 기초부는 너비가 43m, 높이가 11m가 넘는 대규모의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중심부 하단에 뻘흙을 깔아 기초를 다진 후 그 안팎으로 진흙과 모래흙을 다진 판축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를 쌓아가며, 일부에 식물유기체를 깔거나 자갈을 이용하여 토루를 보강하는 등 독특한 축성기술을 동원하였다.
 +
 +1925년(을측년) 대홍수 시 중국제 청동자루솥, 허리띠장식 등 상류층이 사용한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주목받아왔다. 1936년에 조선고적(제27호)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6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도 경당지구 발굴조사를 거치며 한성백제시대 첫 도읍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발굴조사가 지속되며 풍납토성이 백제의 최초 도성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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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 내부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구들과 수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상수도로 추정되는 토관, 백제 초기 최초의 동서남북대로 유구, 대형 주거지, 백제 최초의 지상식 기와 건물지, 신전 추정 초대형 건물지, ‘大夫’, ‘井’자 등이 생겨진 항아리 등 한성백제기 최고 상류층 사용 주요시설이 확인되어,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시대 최고의 왕성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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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풍납리토성’은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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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