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청진동_출토_백자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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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2016년 07월 01일 지정) | | ||
| +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 ||
| + | | **시대** | 15~16세기 | | ||
| + | | **소유** | 국유 | | ||
| + | | **관리** | [[대한민국: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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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이 백자항아리 3점은 2009년 종로구 청진동 235-1 일원 피맛골에서 일괄 출토된 것으로, 아무런 문양이 없는 순백자항아리이다. 15∼16세기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관요산 양질(良質)의 백자는 이 시기 이후 제작품보다 남아 있는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본적으로 가치가 높은데, 이 항아리는 만듦새가 좋고 무엇보다 출토지가 명확하여 주목된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운종가(雲從街)라 불리우던 오늘날의 종로 청진지구에 대한 발굴 결과는, 조선 초 도시의 원형과 도로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도자 유물을 대거 드러냈다. 이 백자항아리 3점은 청진동 발굴의 대표적인 출토품이다. 조선 백자항아리는 접시‧대접‧병 등과 함께 조선시대 백자 중에서 많이 만들어진 그릇의 하나로, 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중심적인 기종(器種)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백자항아리는 외형상 몸체의 무게중심이 어깨 부분에 있고 비교적 장신(長身)인 입호(立壺)와 무게중심이 몸체 중앙에 있어 둥글게 보이는 원호(圓壺)로 크게 나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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