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정릉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정릉 [2025/04/01 05:57]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정릉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서울 정릉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20081411072800.jpg?400|서울 정릉 }} ||
 +| **종목** | 사적 (1970년 05월 26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 **시대** | 조선 태종 9년(1409), 현종 10년(1669) | 
 +| **소유** | 국(국가유산청) |
 +| **관리** | 국가유산청 조선왕릉중부지구관리소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동, 정릉) | 
 +
 +===== 소개 =====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
 +신덕황후는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풍습에 따라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가 되었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최초의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둘째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정치적 기반을 닦았으나 이 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 9)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太平館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의 상소로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정릉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
 +능침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을 생략하고 문석인과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이후 1899년(광무 3)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