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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앨버트_테일러_가옥_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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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앨버트_테일러_가옥_딜쿠샤 [2025/04/02 04:49]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앨버트_테일러_가옥_딜쿠샤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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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register/2017081414312900.jpg?400|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 ||
 +|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2017년 08월 08일 지정) |
 +| **분류** | 등록문화유산 / 기타 / 주거숙박시설 | 
 +| **시대** | 1920년대 | 
 +| **소유** | 국가유산청 |
 +| **관리** | 서울특별시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행촌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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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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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세계로 타전한 AP통신사 특파원이었던 앨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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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그의 아내(Mary Linely Taylor)가 1923년 거주를 위해 건립한
 +
 + 가옥으로, 역사적 인물의 삶을 조명하고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건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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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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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앨버트 테일러는 1910년부터 서울에 거주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선언과 제암리학살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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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전파하였다. 특히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서 발견한 3.1독립
 +
 + 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다가 일제의 눈을 피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
 + 알렸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의 항일독립운동을 도왔다. 이로 인해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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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감생활을 거쳐 추방됐으며 48년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
 +<건축학적 특징>
 +
 +○ H자형 평면의 지하1층 지상 2층의 프랑스식 쌓기의 벽돌조 건물로 외벽의 벽돌쌓기 방식이 특이
 +
 + 하다. 즉 일종의 ‘공동벽 세워쌓기 (rat-trap bond)’로 한켜는 면이 표면에 나타나도록 세워쌓고
 +
 + 한켜는 면과 마구리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쌓았다.
 +
 +○ 평면은 박공지붕의 양 익부와 가운데 5개의 열주가 있는 중앙부(전면은 베란다)로 구성되었
 +
 + 으며, 중앙부 4칸 중 좌측 한 칸이 현관과 홀 및 돌출반원형 계단이 있고, 나머지 3칸은 2짝씩의
 +
 + 유리문 3개가 있는 대연회장이, 그리고 동측 익부는 벽난로가 있는 식당, 서쪽 익부는 욕실과 
 +
 + 옷방이 딸린 2개의 자녀방(나중에 손님방), 그리고 후면부는 식료 저장고, 창고 등 서비스구역
 +
 + 들로 구성되었으며, 2층도 1층과 비슷한데 중앙의 응접실에서는 저 아래 도시와 저너머 산들이 
 +
 + 조망되고 화창한 날에는 한강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하층에는 나무, 석탄, 와인을 저장
 +
 + 하였으며, 벽난로와 거대한 이동식 난로, 얼음상자 등이 있었다.(Mary Linely Taylor, 「Chain of
 +
 + Amber」참조) 창호는 오르내리기 창호(외벽의 내부창)와 여닫이 창호, 미서기 창호가 혼재되어 
 +
 + 있으며, 바닥은 목조마루이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