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선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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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선농단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서울_선농단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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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서울 선농단 ====== | ||
| + | | {{ http:// | ||
| + | | **종목** | 사적 (2001년 12월 29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서울시 | | ||
| + | | **관리** | 서울 동대문구 | | ||
| + | | **소재지**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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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선농단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으로 제사지내던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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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려시대에도 선농제는 행해졌는데 중국 의식을 따라 정월 해일에 적전(籍田)에서 신농씨와 후직에게 제사를 지냈다. 성종 2년(983) 정월 신미일에는 환구단에서 기곡제를 지내고 같은 달 을해일에 적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경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전반적으로 불교나 팔관회와 같은 고유 전통에 의존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이 시대의 선농제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시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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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시대에는 유교 예법에 의거한 선농제가 국가의 주요 전례(典禮)가 되었고 그 의미도 강화되었다. 태종은 선농제의 제향일을 정월 길(吉) 해일에서 경칩 이후 길한 해일로 바꿔 거행하고 친경의계를 제정하였다. 중농․후농제를 폐지하고 대신 삼신을 대표하는 선농제만 모셨다. 태조 1년(1392)에는 한양 근교에 왕이 친경(親耕)하는 전지(田地)인 동적전을 설치하고 경작하였으며 이를 관장하여 경작과 수확을 살피는 고직인 적정령이 내려지고 승(丞)이 설치되었다. 태종 14년(1414)에는 선농제를 위한 제단의 단과 유의 설치 규정이 마련되었다. 세종 재위 당시에는 친향선농의와 친경의주를 제정하고 《국조의례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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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폐지된 제향행사는 1979년에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선농단친목회에 의해 비로소 재개되었으며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에서 인수받아 매년 선농제를 모시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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