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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 경모궁지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4741.jpg?400|서울 경모궁지 }} || |
| | | **종목** | 사적 (1973년 08월 14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원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소유** | 국가 | |
| | | **관리** | 서울 종로구 | |
| |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연건동 28-2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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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함춘원은 조선시대의 정원으로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위치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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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여지비고』에는 창경궁의 동쪽, 경희궁 개양문의 남쪽 등에 있는 궁궐의 정원 이름이 함춘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 그 입지나 규모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창경궁 동쪽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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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춘원은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짓고,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곳에 나무를 심고 담장을 둘러 그곳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성종 24년(1493)년에 정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창경궁에 딸린 정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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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산군 때에는 함춘원 밖의 백성들의 집을 없애고 확장하였으며, 군대를 배치하여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고 대문을 만들었다. 그 후 중종은 백성들을 다시 돌아와 살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덕빈의 시신을 임시로 묻는 등 점차 관리가 소홀해졌으며, 인조 때에는 함춘원의 절반을 태복사에 나눠주었다. 이후 140여년간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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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조 40년(1764)에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지었고, 정조가 즉위하자 이곳을 경모궁으로 불렀으며, 정조 9년(1785)에는 이 일대를 정비하였다. 광무 3년(1899)에 경모궁에 있던 장조 즉 사도세자의 위패를 종묘로 옮기면서 경모궁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으며, 경모궁도 경모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광무 4년(1900)에는 경모궁 터에 6성조 즉 태조·세조·성종·숙종·영조·순조의 초상을 모시던 영희전을 옮겨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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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뒤 일제가 나라를 강점한 후 경모궁 일대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옛 건물이 불타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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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춘원은 조선 후기의 세련된 건물 중 하나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함춘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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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춘원지 → 서울 경모궁지)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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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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