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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삼국사기 [2025/04/01 05:59] – 만듦 sh | 대한민국:국가유산:삼국사기 [2025/04/02 04:53] (현재) –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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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국사기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768.jpg?400|삼국사기 }} || |
| | | **종목** | 보물 (1981년 07월 15일 지정) | |
|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관판본 | |
| | | **시대** | 조선 중종 3년(1512) | |
| | | **소유** | 조*** | |
| | | **관리** | 조***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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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인종 23년(1145)경 김부식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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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11명이 참여하여 편찬되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12세기 전반의 상황은 고려 건국 후 200여년이 흘렀고 문벌귀족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으며, 유교와 불교가 서로 어우러져 고려 왕조가 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기 역사의 확인 작업으로 전 시대의 역사정리가 필요하였다. 조정에서는 거란을 물리친 후 자신감에 차 있었고 여진의 위협에 대한 강렬한 국가의식이 고조되어 있었다. 또 한편 문벌귀족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했는데, 분열과 갈등을 국가가 망할 수 있는 원인으로 강조함으로써 현실비판의 뜻과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알리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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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사기(三國史記)를 간행한 경위는 경주부윤(慶州府尹) 이계복의『삼국유사』중간에 밝힌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삼국본사(三國本史)와 유사(遺事) 두 책이 다른 데서는 간행된 적이 없고 본부(경주부)에 판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되어 판이 망가져 한 줄에 겨우 4∼5자 밖에는 알아볼 수 없다 ’고 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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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크기는 가로 20.7㎝, 세로 30.2㎝이며, 원판이 닳아서 복구할 수 없는 곳, 잘못된 글자, 빠져 있는 글자 등의 결점은 있지만『옥산서원본(玉山書院本)』과 함께 현재까지는 가장 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통일신라시대를 포함한 한국고대사를 연구함에 있어『삼국유사』와 더불어 역사자료로서의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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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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