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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사택지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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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택지적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9175.jpg?400|사택지적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83년 09월 29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국*** |
 +| **관리** | 국*** |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 | 
 +
 +===== 소개 =====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유일한 석비로, 백제 의자왕 때의 대신이었던 사택지적이 남긴 비이다.
 +
 + 사택지적은 백제 후기의 대성 8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택 씨 출신으로, 의자왕 2년(642)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백제로 돌아왔다. 대좌평의 직위에까지 올랐으나 의자왕 14년(654) 관직에서 물러났다.
 +
 + 이 비는 그가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만든 것으로, 길쭉한 사각형태를 하고 있다. 앞면을 다듬어 가로, 세로로 줄을 그은 후 그 안에 한 자씩 글씨를 새겨 두었으며, 오른쪽에는 동그라미 안에 봉황을 새겨 붉은색을 칠한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비문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유행한 사륙병려체(四六騈驪體)로 된 아름다운 문장이 담겨있고, 글씨에서는 웅건한 힘이 느껴져 당시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
 +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세운 비로, 이 비를 통해 백제에 이미 도교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