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비해당_소상팔경시첩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비해당_소상팔경시첩 [2025/04/02 04:48]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비해당_소상팔경시첩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비해당 소상팔경시첩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4799.jpg?400|비해당 소상팔경시첩 }} ||
 +| **종목** | 보물 (2004년 05월 07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시고류 / 시고 | 
 +| **시대** | 조선 세종 24년(1442)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 소개 =====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세종(世宗) 24년(1442)에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호는 비해당(匪懈堂))의 주선으로 송영종(宋寧宗)의 팔경시(八景詩)를 모탑(模탑)하고 팔경도(八景圖)를 그려 판각한 다음, 고려의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를 이서(移書)하고 김종서(金宗瑞)·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안지(安止)·강석덕(姜碩德)·최항(崔恒)·남수문(南秀文)·신석조(辛碩祖) 등 19명의 시문을 받아 본시(本始) 두루마리로 꾸민 시권(詩卷)에서 팔경도와 송영종의 팔경시가 일탈(逸脫)된 상태에서 첩장(帖裝)으로 개장한 것이다.
 +
 + 시첩의 구성은 본래 송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 그리고 고려의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를 위시한 세종 당시의 시인들의 시와 이영서의 서문이 포함된 두루마리[권축장(卷軸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송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는 남아있지 않으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45면(面)의 첩장(帖裝)으로 개장되어 있다. 그리고 서문은 만우(卍雨)의 시 다음에 위치해 있던 것을 최근에 옹정춘의 제서(題書) 다음으로 옮겨 개장한 것이다.
 +
 + 작자는 모두 21인(고려 2, 조선 19)인데, 이 중 조선조 19인의 시문(詩文)은 찬자(撰者) 자신의 진필(眞筆)로 판단된다.
 +
 + 세종조(世宗朝)에 활약한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들의 업적은 사서(史書)에 상술되었고 당시에 편찬한 서적들도 대부분 남아있다. 그러나 단종(端宗)으로부터 세조(世祖)에 이르는 사이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위시하여 황보인, 김종서 등이 피살되고 단종복위(端宗復位) 운동으로 사육신(死六臣) 등 많은 명사들이 희생되었으며, 이어서 집현전도 폐지되면서 당시 사림들이 남긴 진적(眞蹟)은 전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와 이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은 당대의 저명한 문인학사 19인의 유묵(遺墨)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높이 평가된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