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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여 송국리 유적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6588.jpg?400|부여 송국리 유적 }} || |
| | | **종목** | 사적 (1976년 12월 31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지 / 주거지 | |
| | | **시대** | 선사시대 | |
| | | **소유** | 부여군 등 | |
| | | **관리** | 부여군 | |
| |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산24-1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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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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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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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토기와 달라 송국리식토기라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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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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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국리 집터는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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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b>※(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 →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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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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