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_개암사_대웅전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 양쪽 이전 판이전 판 | |||
| 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_개암사_대웅전 [2025/04/02 04:51]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_개암사_대웅전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 ||
|---|---|---|---|
| 줄 1: | 줄 1: | ||
| + | ====== 부안 개암사 대웅전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 ||
| + | | **시대** | 조선시대 중기 | | ||
| + | | **소유** | 개암사 | | ||
| + | | **관리** | 개암사 | | ||
| + | | **소재지** |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개암사 (감교리) | | ||
| + | |||
| + | ===== 소개 ===== | ||
| + | 개암사의 연혁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안향토문화지》등에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妙蓮王師)가 변한의 궁궐을 절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암사중건사적〉을 보면 고려 숙종조에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는데, | ||
| + | |||
| + | 그러나 개암사의 현황은 기록상의 배치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응향각, 동쪽에 응진전이 있고 도량 아래에는 월성대와 요사가 마당 한쪽에 치우쳐 있다. | ||
| + | |||
| + | 대웅전은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하여 높게 자리하고 있다. 기단은 2중인데 장대석을 5단으로 가지런히 쌓은 상부 기단은 원래의 것이고,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하부 기단은 마당을 낮추며 근래에 만든 것이다. | ||
| + | |||
| + |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추녀 끝에는 활주가 받치고 있다. 1636년(인조 14)에 계호대선사(戒浩大禪師)가 중건한 것이며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 중수가 있었다. | ||
| + | |||
| + | 초석은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간에는 창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주간포를 배치하기 위한 평방을 짜 올렸는데 평방을 통부재로 쓰지 않고 두 개의 부재를 맞대고 촉을 끼워 단일재처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이것은 통부재 보다 목재의 뒤틀림에 대해 보다 효과적이며 이와 같은 방법은 위봉사 보광명전이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도 볼 수 있다. | ||
| + | |||
| + | 이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의 짜임과 그 부재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이다. 공포는 모두 내외 3출목 구조로서 전면의 공포는 연꽃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주두는 연꽃잎을 조각한 하엽주두(荷葉柱枓)인데 하엽의 형태가 세 가지이다. 어칸의 주심과 주간포에는 복잡한 형태의 두 가지 하엽주두를 번갈아 사용하였고 귀공포와 인접한 주간포에는 단순한 형태의 하엽주두를 받쳐서 통식(通式)의 직절한 귀주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였다. 숭림사 보광전과 화암사 극락전에서도 하엽주두를 볼 수 있으나 이 건물처럼 다양하지는 못하다. | ||
| + | |||
| + | 이 주두 위에 살미와 첨차가 중첩되어 짜여진다. 각 제공의 외단은 3제공까지 앙서형이고 보 밑의 4제공은 당초문을 초각하였다. 도리 밑의 초공은 전면에서 봉두를 초각한 반면 후면과 측면에서는 당초문을 새긴 형태로서 그 시기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 ||
| + | |||
| + | 그러나 출목첨차의 모습은 그 유래가 드문 독창적인 형태이다. 줄기와 연화문을 초각한 첨차와 소로의 중첩된 모습은 마치 연꽃이 올라가며 겹겹이 피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화려한 공포는 숭림사 보광전과 정수사 법당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숭림사 보광전은 공포의 세부적 수법과 천장의 구성수법 등 전체적인 기법이 이 건물과 거의 유사한다.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동일목수 또는 같은 계보를 가진 목수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 ||
| + | |||
| + | 정면과는 달리 측면과 배면의 공포는 당시 일반적인 교두형 첨차로 꾸며져 있어 정면성을 중시하는 전통건축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창호도 전면만 화려하게 꽃살문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나 이전에는 정자살문이었다. 인근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볼 수 있듯이 17~18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이 꽃살창을 많이 사용함에 따라 최근에 바꿔 단 것이다. | ||
| + | |||
| + | 17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은 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건축술을 바탕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내부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개암사 대웅전도 마찬가지다. | ||
| + | |||
| + | 대웅전의 내부에는 두 개의 고주를 세워 후불벽을 형성했다. 통례와 같이 측면 평주 보다 고주를 뒤로 물려 배치하고 충량이 대량에 걸치도록 하였다. 그 위에 세 단의 층급천장을 구성함으로써 내부 공간은 실제보다 높게 느껴지는데 이 공간을 용과 봉황으로 가득 꾸미고 있다. | ||
| + | |||
| + | 특히 전면 주간포와 귀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뻗어 나온 9개의 용두는 강렬하게 불단을 장엄하고 있으며, 주간포에는 용두와 어우러져 날개를 활짝 핀 봉황을 배치하고 있다. | ||
| + | |||
| + |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상부에는 닫집을 설치했다. 닫집은 정자형의 물림닫집으로 정면 처마 위에 박공면을 가진 특수한 형태이다. 그 속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공중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이 건물은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 ||
| + | |||
| + | {{tag>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