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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군이석수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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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군이석수묘역 [2025/04/01 05:55]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부안군이석수묘역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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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안군이석수묘역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18102314310900.jpg?400|부안군이석수묘역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5년 09월 15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 **시대** |  | 
 +| **소유** | 국방부 |
 +| **관리** | 전주이씨 무산군파 종중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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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이 묘역은 조선 제 9대왕인 성종(成宗)의 손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로로 선무종훈(宣武從勳)된 바 있는 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1524년~1598년)의 분묘와 그 부인인 현부인(縣夫人) 평강채씨(平康蔡氏)의 분묘가 자리한 묘역으로 현재 동작동 국립현충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
 + 부안군 이석수는 성종과 명빈김씨(明嬪金氏)와의 사이에 난 무산군(茂山君)의 아들로 중종 19년(1524) 태어나 선조 31년(1598) 세상을 떠났다. 처음 창선대부(彰善大夫) 부안정(扶安正)을 제수 받았으나 갑진년에 혼전(魂殿)에 입직한 공로로 명선대부(明善大夫) 도정(都正)을 제수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선무종훈(宣武從勳)되었다.
 +
 + 묘역은 그가 세상을 떠난 1598년 경 최초 조성되었을 것이나 묘비가 영조 3년(1727)세워진 것으로 보아 이 묘비가 세워질 무렵 재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
 + 묘역 내에는 부안군 이석수의 묘와 그배위 현부인 평강채씨의 묘 외에도 그손자인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縣夫人) 남원윤씨(南原尹氏)의 묘 등 총 4기의 분묘와 석물 6기가 자리하고 있다.
 +
 + 부안군과 평강채씨의 묘는 순안군과 남원윤씨의 묘 아래쪽으로 단차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묘 뒤쪽으로는 사성(莎城)이 조성되어 분묘를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며 용미(龍尾)가 조성되어 있다. 묘비에 따르면 부안군이 향좌측(向左側)에, 평강채씨가 향우측(向右側)에 자리하고 있다.
 +
 + 묘 앞에는 계체석(階砌石)을 기준으로 볼 때 묘비(墓碑)・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 등이 계체석 위쪽(‘上階砌’라 한다.)으로 놓여 있고, 향로석(香爐石)이 상석에 붙어 계체석 아래쪽(‘下階砌’라 한다)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계체석 아래에는 문인석 2기가 각각 좌・우 1기씩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이나 장명등 등의 석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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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안군의 묘와 평강채씨의 묘 앞 중간에 세워진 묘비는 농대가첨석(籠臺加檐石) 양식으로 비 몸돌을 직육면체의 대좌(‘方趺’라 한다) 위에 끼우고 이 위에 한옥 지붕 모양의 돌(‘屋蓋石’이라고 한다)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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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인석은 좌우 모두 금관 조복을 착용 하고 손에는 홀(笏)을 든 모습인데 얼굴 부분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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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안군(順安君) 이선룡(李善龍)과 그 배위 현부인 남원윤씨, 여흥민씨 묘는 봉분이 많이 허물어져 있고 석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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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