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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봉원사_아미타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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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원사 아미타괘불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613547.jpg?400|봉원사 아미타괘불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14년 07월 03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석가불도 | 
 +| **시대** |  | 
 +| **소유** | 봉원사 |
 +| **관리**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산 1 봉원사 | 
 +
 +===== 소개 =====
 +이 괘불도는 아미타불ㆍ관음보살ㆍ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을 화면 가득 묘사하고, 이 아래 가섭존자ㆍ아난존자,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하였다.
 +
 + 이와 같은 도상은 서울시 비로자나삼신불괘불도(1832, 흥천사) 및 석가모니괘불도(1886, 봉은사) 등과 동일한 도상을 공유하면서 상단 부분만 아미타삼존으로 바꾼 것으로, 유사한 예로 봉국사 괘불도(1892년 유형문화유산), 지장사 괘불도(1901년 유형문화유산), 연화사 괘불도(1901년 유형문화유산), 고양 흥국사 괘불도(1902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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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와 같이 동일한 도상(佛ㆍ가섭ㆍ아난ㆍ관음보살좌상ㆍ사천왕)을 공유하면서 상단 부분의 주존불만 바꾼 서울 개운사 괘불도(1879)를 화본으로 삼은 내원암 괘불도(1885), 화계사 괘불도(1904)로 미루어 19세기 서울, 경기지역에 위와 같은 수법이 대두하여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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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한 이 괘불도는 서울,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수화승 한봉당 응작 등 12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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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불화는 1901년에 경운궁에 살던 고종태황제 後宮 淳嬪邸下인 엄비가 돌아가신 부모와 외가 조상 등의 극락왕생을 발원, 시주하여 봉원사에 이 괘불도를 봉안하였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돋보이는 점, 아미타불ㆍ관음보살ㆍ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 아래 권속인 가섭ㆍ아 난, 사자를 탄 문수동자ㆍ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의 배치는 19세기 전통을 계승한 20세기 초기 아미타괘불도로 높이 평가할 만한 점, 화승인 덕월당應崙과 청암당雲照는 1895년 불암사 괘불도, 범화당潤益은 1862년 청계사 괘불도의 조성에 참여한 바, 12명의 숙련된 화승이 공동 제작한 이 왕실발원 아미타괘불도는 각 세부묘사 등이 당시 불화와 비교하여 정교한 편으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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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