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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봉원사_도량장엄용_불화_칠여래도‧사보살도‧팔금강도 [2025/04/01 05:54] – 만듦 sh | 대한민국:국가유산:봉원사_도량장엄용_불화_칠여래도‧사보살도‧팔금강도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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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봉원사 도량장엄용 불화(칠여래도‧사보살도‧팔금강도)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2090610484600.png?400|봉원사 도량장엄용 불화(칠여래도‧사보살도‧팔금강도)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21년 03월 11일 지정) | |
| |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
| | | **시대** | 20세기 초 | |
| | | **소유** | 봉*** | |
| | | **관리** | 봉***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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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인 봉원사에 전하는 야외의식용 불화이다. 야외 의식에 사용된 칠여래도7점, 사보살도 4점, 팔금강도 8점 등 총 19점이 현존한다. 19점의 불화는 대체로 세로122~126cm, 가로 76cm 크기의 면본에 그렸다. 존격이나 도상의 구분 없이 동일한 화폭을 미리갖춰둔 후 하나의 세트로 제작했으며, 상축 위쪽에 원형 고리가 있어 도량에 걸어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배경이 없는 화면에 해당하는 존상을 도해하고 적색, 녹색, 청색, 백색 안료로 채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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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원사에 전하는 또 다른 도량장엄용 불화(오여래도․사보살도․팔금강도․십이신장도)와는 차이가있어, 20세기 도량장엄용 번의 구성과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칠여래도는 오여래도와 마찬가지로 역시 영혼의 구제를 위한 의식과 관련 있다. 수륙의식집에서는 주로 묘색신여래, 광박신여래, 이포외여래, 감로왕여래와 보승여래로 이루어진 오여래를 청했다면, 재공의식집 계통에서는 칠여래를 선호했다.『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의궤경』,『유가집요염구시식의』,『권공제반문』(1574), 『운수단』(1664),『제반문』(1694)에서는 오여래에 보승여래와 아미타여래가 포함된 칠여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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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를 봉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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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여래도는 원형의 두광에 방형의 신광을 갖춘 정면향의 존상으로 도해했다. 각 여래는 적색 법의와 흰색 군의의 기본 색조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수인의 형태에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성이다. 방제를 별도로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불화 뒷면에서 후대에 적은 헌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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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보살과 팔금강은 『금강경』에서 연원한다.『금강경』소청(啓請)에는 금강경을 수지(受持)하는 자가 있어 지심으로 정구업진언을 염송한 연후에 팔금강과 사보살의 명호를 계청하면 머무르는 곳 어디에서든 항상 옹호할 것이라 하였다. 사보살도는 왼쪽과 오른쪽을 향해 합장한 각 2위의 보살을 도해했다, 녹색 두광에 분홍색과 연한 녹색의 신광을 배경으로 군의, 천의, 소매자락 등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채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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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금강도 역시 방제나 화기는 없으나 화면 가득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금강이 무기와 바위를 들고 힘 있는 모습을 도해했다. 팔금강도에는‘상해공(上海公)’, 'F.H. Glover & CoManchester'라는 마크가 찍혀 있다. 불화에 찍힌 도장을 통해 볼 때 바탕 재료로 상해공사를 통해 수입된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면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산 수입면은 옥처럼 하얀 서양옷감이란 의미로‘옥양목’이라 불렸는데, 전통 면직물인 무명보다 얇은 빛깔과 맵시로 인기를 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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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렸다. 개항 이전부터 청나라 상인을 통해 유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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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수입면을 사용한 이른 시기의 예로 왕실의 원당이었던 용주사에서 1882년에 조성한 용주사 팔금강도가 있다. 순빈저하(淳嬪邸下) 엄씨(嚴氏)가 1901년에 봉원사 괘불을 발원한 한 해 뒤인 1902년에 조성한 고양 한미산 흥국사 괘불 역시 맨체스터 면에 제작되었다. 조선에 들어온 외국산 수입품 중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품목이 면 제품이고, 이들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구매력이 있는 상류층에서 많이 소비되었다. 봉원사 도량장엄용 불화에서 근대기 새로운 재료의 수급과 소비층의 동향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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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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