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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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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2025/04/02 04:51]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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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20344.jpg?400|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 ||
 +| **종목** |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 **소유** | 봉*** |
 +| **관리** | 봉*** |
 +| **소재지**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봉암사 (원북리) | 
 +
 +===== 소개 =====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비로, 최치원의 4산비(四山碑)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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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증대사(824∼882)는 17세에 부석사에서 승려가 되었고,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를 창시하였다. 헌강왕 8년(882)에 입적하자, 왕은 ‘지증’이란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은 ‘적조’라 하였다.
 +
 + 거북모양의 비받침은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몸은 거북 모양이며, 등 위에는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갖추고 있다. 비몸 위로 올려진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서로 다투듯 얽혀 있는 8마리 용이 장식되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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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문에는 지증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데, 통일신라 후기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글을 짓고, 당대의 명필인 승려 혜강이 글씨를 썼다. 글씨는 왕희지체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꾸밈이 없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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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비는 통일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세웠으며, 조각과 비문의 글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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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