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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봉수당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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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봉수당진찬도 [2025/04/02 04:49]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봉수당진찬도 [2025/04/02 04:54] (현재)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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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수당진찬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6442.jpg?400|봉수당진찬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8년 07월 10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 계회도 | 
 +| **시대** |  | 
 +| **소유** |  |
 +| **관리**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26 동국대학교 박물관 | 
 +
 +===== 소개 =====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봉수당진찬도는《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8폭 중의 한 폭으로《화성능행도병》은 정조가 1795년(정조 19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에 걸쳐 화성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1735-1762)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행(行幸)했을 때의 주요 행사를 그린 병풍으로 그 중 <봉수당 진찬도>는 현륭원 행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을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진찬례는 화성행궁에 도착한지 사흘째인 윤2월 13일에 봉수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이 연회에는 친인척 82명이 초대되었다 한다. 
 +
 + 그림은 화면 상단에 봉수당을 포치하고, 중량문을 지나 하단의 좌익문을 연결하는 행각과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그 안쪽으로는 진찬광경이 그려져 있다. 봉수당 앞 계단에서 뜰에 이르기까지 임시로 덧마루를 설치하고, 대형 차일이 쳐진 백목장(白木帳)을 둘러 공간을 구분하였다. 봉수당 온돌방에 마련되어 있는 혜경궁과 내외명부의 자리는 주렴으로 가려져 있고, 보계의 왼편 앞쪽에는 병풍을 둘러쳐져 있으며, 그 안쪽에는 호피보료방석이 보이는데, 이는 정조의 자리임을 암시한다. 물론 위대한 인물을 그려 넣지 않는 조선시대 기록화방식을 따라 정조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호피방석이 2006년 보물 제1498호로 지정된 <조선후기 문인초상>의 방석과 유사하다는 점으로서, 정조 년간 상층계층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덧마루 위에는 융복(戎服)차림의 의빈(儀賓)과 척신(戚臣)들이 좌우로 나누어 쭉 앉아 있으며, 그 중앙에는 여령(女&#22984;)들이 음악에 맞추어 일종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중앙문 밖에는 어가를 호위해 온 백관(百官)들이 융복(戎服)차림으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찬탁(饌卓)위에는 술잔과 함께 하사받은 꽃(종이꽃)이 꽃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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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수당진찬도>는 동국대학교 소장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삼성미술관, 고궁박물관, 일본 교토대학 문학부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형식은 같지만 세부묘사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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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대학교본은 다른 진찬도에 비해 채색의 농도가 짙고, 묘사가 대체로 정밀하며 마치 위에서 본 듯 축약된 병풍 화면형태나 병풍 폭의 꺽이는 부분묘사, 인물들의 실감나는 동작 표현 등은 여타본 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와나 함 등에 명암이 절묘하게 구사되어 있는 점 등은 행사가 행해졌던 시기보다는 좀 더 후인 19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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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은 비록 단폭(單幅)으로만 전해오지만,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가필의 흔적이 없고 19세기 기록화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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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