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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보은_법주사_벽암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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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8498.jpg?400|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80년 11월 13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 |
 +| **관리** |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 |
 +|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 
 +
 +===== 소개 =====
 +법주사의 절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벽암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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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암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각성이며, 벽암은 그의 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해전에 참여하였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려들을 이끌고 3년만에 공사를 완성시키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천도하자 승려 수천 명을 모집하여, 호남의 군사들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전쟁이 끝나버리므로 승려들을 돌려보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인조 24년(1646)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머물렀고, 희언이 화엄사로 가서 입적하자 그도 화엄사로 들어가 지내다가, 현종 1년(1660) 86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
 + 비는 넓직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후, 제법 묵직하고 투박한 머릿돌이 얹은 모습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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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