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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보은_김진묵_송덕비_및_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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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0785.jpg?400|보은 김진묵 송덕비 및 비각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3년 04월 1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1930 | 
 +| **소유** | 김해김씨삼현파 용계공소종중 |
 +| **관리** | 김해김씨삼현파 용계공소종중 |
 +| **소재지**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월송리 480-2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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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이 송덕비는 조선 말기 용계(龍溪) 김진묵(金振默)의 덕을 기리기 위해 개국(開國) 539년, 즉 1930년에 설치한 비이다. 비문은 부제학(副提學) 정만조(鄭萬朝)가 짓고 판돈영(判敦寧) 윤용구(尹用求)가 썼으며 비각 서문은 윤명학(尹命學)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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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립연대가 얼마 안되었으나 비석 건립연호를 개국(開國)으로 사용한 것이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후대에 각자(刻字)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5㎝, 폭 60㎝의 오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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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에 건립한 비각은 8.68㎡ 규모로 전면 1칸, 측면 1칸으로 목조기둥에 팔작지붕의 기와집으로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우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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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경에 지어진 건축 중에는 건축적인 형태가 매우 균형이 잡혀 있으며, 건축의 각 부재의 사용도 건실한 자재를 사용하였고 가구의 수법은 매우 정교한 기교가 엿보인다. 근대 건축 중에서 전통적인 건축형식을 갖춘 건축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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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규모와 건축양식면에서 우수하며, 내부 상단 벽면에 16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벽화는 비문을 쓴 윤용구(1853∼1939)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윤용구는 해서와 행서에 능하고 난과 대를 잘 그렸다. 비각 좌측면 현판은 임신년(壬申年, 1932)에 윤명학이 쓴 것으로 일본 연호 ‘소화(昭和)’를 사용하지 않고 고갑자(古甲子)를 사용하였다. 이는 일본 연호 사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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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묵의 자는 성학(聖學)이고 호는 용계(龍溪), 본관은 김해이다. 조선 철종 10년(1859) 보은에서 출생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모범이 되었으며, 구한말 잦은 수해와 병란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자 곡식을 나누어 주어 빈민구제에 앞장서 주민들이 그 덕을 기리어 송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진묵은 내부(內府)와 외서(外署)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목릉(穆陵, 선조(宣組)의 릉)을 다시 축조하고 비서승(秘書丞)에 올랐다. 일제시대에 건립된 건축물로 규모, 양식 등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근대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건축물로 건축적인 기교나 수법은 매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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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