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보성봉강리정씨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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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보성봉강리정씨고택 ====== | ||
| + | | {{ http:// | ||
|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5년 12월 27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정태환 | | ||
| + | | **관리** | 정태환 | | ||
| + | | **소재지** | 전라남도 보성군 봉서동길 36-8 (회천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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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고택의 전체구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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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 가옥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사당, 문간채, 곳간채 등을 갖춘 전형적인 대농가옥이다. 특히 대지가 넓고, 전체적으로 건물들의 간살이가 넓으며, 평면이 일자형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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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집터의 형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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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보성 봉강리는 영광정씨 세거지로 조선시대 후기에 입향하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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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실질적으로 정손일의 현손 정도삼의 호가 구정(龜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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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뒤로는 전국최대의 철쭉 군락지인 일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앞으로는 보성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누가 보아도 청룡이 굽이쳐 내려오고 그 가운데 점지한 대지는 명당으로서의 위용을 느낄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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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택은 집터가 넓어 안마당을 두었고 각 건물들이 각각 별도로 분산형으로 위치하고 있어 배열 원칙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친자연적이고 대지에 순응한 배치기법이라 할수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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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살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도면상의 도식적인 배치원칙을 따르기 보다는 진입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실제 움직임상의 선후관계를 고려한 기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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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옥별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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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채는 지금부터 400여년 전에 정손일에 의해 초가로 건립되었으며 이후 정손일의 9대손인 정각수에 의하여 1890년대 초가를 헐고 그 위치에 기와로 새로 지어졌으며 민족주의 운동과 교육사업을 한 정해룡이 중건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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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채는 후면으로 돌출시켜 전체적으로는 요자형의 평면을 하여 가옥의 배면에 둘러싸인 여성적인 공간, 즉 다소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가사작업과 수장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사랑채는 두곳이 있었으며 문간채인 바깥사랑과 현재의 사랑채가 그곳이다. 바깥사랑채는 ㄱ자형이었고 안사랑채는 일자형 이었으며 정도삼에 의거 건립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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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후 정도삼의 7대손인 정해룡에 의해 중수 되었으며 이때 안사랑채 앞에 아름다운 정원이 건립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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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특별한 것은 정원으로 뒷산의 계곡에서 끌어들인 물이 흘러와서 집안 개울에 머물다 넘쳐 정원 연못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사군자가 식재되어 있다. 이 나무들은 각각 수목이 갖는 상징을 내포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정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도가적인 삶을 살았던 공간임을 알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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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특히 주변을 돌로 쌓은 조그마한 연못이 한반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당대 이 정원을 조성했던 집안의 각별한 나라사랑을 느낄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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