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백련사_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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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련사 석조여래좌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59423.jpg?400|백련사 석조여래좌상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2년 05월 17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 
 +| **시대** |  | 
 +| **소유** | 백련사 |
 +| **관리** | 백련사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이기대공원로 85-74 (용호동, 백련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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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채색과 도금의 박락 없이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복장물에서 발견된 축원문에는 이 불상을 1906년에 편수 문혜산(文惠山)이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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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상은 양손을 배 앞에서 모아진 공수형을 하고 결가부좌하여 고개를 아래로 숙인 자세이다. 공수형 여래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도전리 마애불 등과 조선후기 나한상 등에서 유사한 수인을 볼 수 있으나, 조선 후기에는 드문 도상으로 다양성이 부각되던 근대에 들어 새롭게 표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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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으로 아담한 신체는 어깨와 무릎 너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육계와 구분 없이 중앙과 정상에 각각 계주가 있다. 둥글고 납작한 얼굴은 눈이 크고 원통형으로 생긴 코와 입 등 이목구비가 작아 귀여운 인상을 준다. 하반신을 감싼 듯 한 옷자락은 옷 주름 표현이 없이 간략하여 17세기 이후 지속되던 조선 후기 불상 양식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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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축원문에 적힌 바와 같이 1906년에 조성된 여래상으로 축원문을 비롯해 황초폭자에 싸인 후령통 등 간략하지만 기본적인 복장납입물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즉 양식이나 법식이 전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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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이 불상의 조성자는 혜산당(蕙山堂) 또는 고산당(古山堂)으로 불리는 축연(竺衍)이다. 축연은 금강산에서 불화 수업을 한 후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1885년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삼신도를 그렸으며, 금호 약효와 함께 범어사 나한전 영산회상도와 괘불도 제작했다. 1920년대에는 양산 통도사 응진전 십육나한도와 신중도 등을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가 매우 넓은 불화승으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까지 당대의 불화승들과 함께 활약하였다. 
 +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정확한 조성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시대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불교미술에 한 획을 그은 불화승인 축연이 제작한 작품으로 문화유산적 가치가 자못 크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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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