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배자예부운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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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배자예부운략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9년 01월 28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활자본 | | ||
| + | | **시대** | 1678년 | | ||
| + | | **소유** | 대전광역시 | | ||
| + | | **관리** | [[대한민국: | ||
| +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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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배자예부운략』은 중국 송나라 때인 1037년에 정도(丁度) 등이 칙명으로 편찬한 『예부운략』을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편찬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원서명 『예부운략』앞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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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선비들의 필수품이었으며 조선에 들어와서도『홍무정운(洪武正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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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전시립박물관 소장본은 금속활자본 중에 1678년(숙종 4)에 간행하고 강윤형(姜允亨)에게 반사된 무신자본이다. 1678년 정월 17일에 옥당관을 소대하고 대내에 없는 『예부운』을 인쇄하여 들이라는 명이 있었으므로 이때 간행하여 여러 신하에게 반사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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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체 운목은 상평성(上平聲) 15운, 하평성(下平聲) 15운, 상성(上聲) 29운, 거성(去聲) 30운, 입성(入聲) 17운의 106운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제5권이 끝나고 이어서 『훈민정음』과 『황극경세성음괘수(皇極經世聲音卦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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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 책은 1678년 간인하여 호조참의 강윤형에게 내사한 당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표지도 개장된 흔적 없이 간행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제1책에는 내사기와 선사지기(宣賜之記) 및 강윤형의 손자 강우성(姜宇聖)의 장서인도 남아있다. 조선후기 활자 인쇄술과 서지학, 국어학, 음운학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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