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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반고서원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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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반고서원유허비 [2025/04/01 05:56]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반고서원유허비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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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고서원유허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7273.jpg?400|반고서원유허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4년 12월 16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조선 숙종38년(1712) | 
 +| **소유** | 국유(환경부), 사유 |
 +| **관리** |  |
 +|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00-1번지 외 | 
 +
 +===== 소개 =====
 +유허비(遺墟碑)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1년(1375)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1년 넘게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重陽節感懷)”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
 +숙종 38년(1712) 언양 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한강 정구(寒岡鄭逑)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槃皐)서원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 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