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박제상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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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박제상유적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7년 10월 09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국유, 공유 | | ||
| + | | **관리** | 울산광역시 울주군 | | ||
| + | |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30-2번지 범서면 척과리 산1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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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 때 활동한 충신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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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및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물왕의 둘째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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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제상은 양산(梁山)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시 왜국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왜로 떠났다. 미사흔의 구출에는 성공하였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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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눌지왕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그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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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치산서원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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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치산서원지는 치산서원의 옛터이다. 치산서원은 1745년(영조21) 박제상과 그의 부인인 금교부인(金校夫人) 및 두 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서원 안에는 박제상을 모신 충렬묘(忠烈廟)와 금교부인을 모신 신모사(神母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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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치산서원지 :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30-2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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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망부석과 은을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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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및 범서읍 척과리에 있는 바위로, 박제상의 부인 치술신모와 관련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왜로 간 박제상이 죽임을 당하자 부인이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두 딸과 함께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다 통곡하다 죽었다고 한다.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고, 혼은 새가 되어 바위에 숨었다고 전해진다. 뒤에 사람들이 새[乙]가 숨은[隱] 바위[巖]를 은을암(隱乙巖)이라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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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망부석 :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산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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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은을암 : 울주군 범서읍 은을길 2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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