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박연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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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박연왕지 [2025/04/02 04:49]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박연왕지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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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왕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19091115410600.jpg?400|박연왕지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19년 07월 05일 지정) |
 +| **분류** | 유물 | 
 +| **시대** | 1411년(영락9년, 태종 11년) | 
 +| **소유** | 밀양박씨난계공파종중 |
 +| **관리** | 영동군 |
 +|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국악로 9 (심천면, 난계국악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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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박연(朴堧, 號 蘭溪 1378~1458). 본관 밀양(密陽), 자(字) 탄부(坦夫), 시호 문헌(文獻), 초명 연(然), 충북 영동 출생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시평(持平)·문학(文學)을 역임하다가 세종이 즉위한 후 악학별좌(樂學別坐)에 임명되어 악사(樂事)를 맡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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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調律)의 정리와 악보편찬의 필요성을 상소하여 허락을 얻고, 1427년(세종 9) 편경 12장을 만들고 직접 제작한 12율관에 의거 음률의 정확을 기하였다. 또한 조정의 조회 때 사용하던 향악(鄕樂)을 폐하고 아악(雅樂)으로 대체하게 하여 궁중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하였다. 공조참의·중추원첨지사를 거쳐 중추원동지사를 지냈다. 1445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인수부윤·중추원부사를 역임한 후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아들 계우(季愚)가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나 그는 세임금을 모신 원로라 하여 파직에 그쳐 낙향하였다. 영동의 초강서원(草江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시문집 《난계유고(蘭溪遺稿)》《가훈(家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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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의 관직임명문서인 왕지는 1411년(태종 11) 문과 급제 홍패로, 88×81㎝ 크기이다. 어보 부분은 확인이 어렵고 홍패의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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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旨 成均生員朴然爲同 進士第一人出身者 永樂九年四月 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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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락 9년인 1411년(태종 11) 식년 문과 동진사 1위(11/33인)로 급제한 왕지로서 조맹부 서풍의 행초서로 내용을 썼다. ?태종실록? 권21, 11년(1411) 4월 1일, 권극중(權克中) 등 33명을 뽑았다는 기사와 일치한다. 일단 교지에 앞서 쓰인 왕지라는 표지, 그리고 을․병․동진사 3등급 중 동진사, 출신 표기 등이 과거 제도와 교지의 서식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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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지는 조선 세종 말기 관직임명문서가 교지로 바뀌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그 수가 많지 않고 관련인물의 중요도, 명확한 제작시기와 희소성을 고려할 때 역사적 ․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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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