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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박구효자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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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박구효자정려비 [2025/04/02 04:49]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박구효자정려비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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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구효자정려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folklore_material/1658846.jpg?400|박구효자정려비 }} ||
 +|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1999년 03월 1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조선중종 30년(1535) | 
 +| **소유** | 박*** |
 +| **관리** | 박*** |
 +|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 83 | 
 +
 +===== 소개 =====
 +정려란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집 앞에 정문(旌門)을 세워 기리던 것으로, 이 비는 조선시대 사람인 박구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
 + 박구(?∼1425)는 효성이 지극한 자로,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곁을 지키면서 한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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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려비는 높이 110㎝, 폭 43㎝, 두께 16㎝의 비석으로 앞면에 비문을 새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의 규모로,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비각의 앞면 윗부분에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비의 내력을 적어놓은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으며, 왼측 윗부분에는 명종이 하사한 치제문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
 + 정려비와 비각 모두 중종 30년(1535)에 세운 것으로, 정려의 조사가 엄격하던 시대에 정표가 내려져 후세에 본보기가 될만하고, 당시의 풍속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향토적으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
 + 원래는 어머니의 묘소 근처인 백천(百川)가에 있었으나, 홍수로 인하여 다른곳으로 옮겼다가, 순조 18년(1818)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