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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조령_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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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조령_관문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조령_관문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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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 조령 관문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718.jpg?400|문경 조령 관문 }} ||
 +| **종목** | 사적 (1966년 03월 22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문경시 등 |
 +| **관리** | 문경시 |
 +| **소재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번지 | 
 +
 +===== 소개 =====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잡았다. 
 +
 + 조선 선조 2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시의 군사와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조령에서 왜군을 막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서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 
 +
 +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해 조령에 대대적으로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하다가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개의 관문을 완성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한다. 
 +
 + 조동문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후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후부터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숙종 34년(1708)에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 성을 고쳐 쌓고, 중성을 삼아 관문을 조곡관이라 했다. 현재의 시설은 페허가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
 +<br/><b>※(문경관문 → 문경 조령 관문)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