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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송죽리_개성고씨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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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송죽리_개성고씨가옥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문경_송죽리_개성고씨가옥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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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 송죽리 개성고씨가옥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3727.jpg?400|문경 송죽리 개성고씨가옥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1년 06월 02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근대주거 / 근대도시 | 
 +| **시대** |  | 
 +| **소유** | 개성고씨 |
 +| **관리** | 개성고씨 |
 +|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덕암안길 19-6 (산양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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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문경에 開城 高氏가 처음 입향한 것은 임란 전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高士原이며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파들이 문경의 각 지역에 분가하여 살고 있다. 痴堂公派는 가장 큰 집으로 송죽리에 터를 잡았다. 이 집은 치당공 高浣(1863~1953)과 그의 아들 高碩林이 1933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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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자락 끝을 남북으로 길게 정지한 대지의 남쪽 끝에 나있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마주하는 사랑채와 그 뒤편에 놓인 튼˥형의 안채·고방채가 튼ㄇ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가 남향한 사랑채와 직교하면서 동향으로 앉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와 안채는 직·병렬로 배치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랑채 전방 좌측인 대문채 우측의 모서리부와 고방채 뒤쪽에 측간을 두었다. 집 주위에는 블록 담장을 쌓고, 사랑채의 배면과 고방채 좌·우측에는 내외담장을 쌓아서 공간을 세 영역으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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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치구성을 보면 공간적·기능적으로 전통적인 유교 관습에 따른 남녀 구분이 지켜지면서도 안채로의 출입이 사랑채를 지나야되는 등의 기본 틀이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다음은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이 전·후퇴가 발달하고 측면에 툇간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안채는 근대 주생활상에 의한 실 면적 확대 요구를 수용하여 규모가 증대되면서 평면이 종횡으로 분할되어 겹집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머름 없는 키 큰 창호와 고창 및 환기창, 쪽소로 장식과 종이반자 등도 19세기 후반 특히 근대기 가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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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가옥은 이런 근대 한옥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 근대기 역사와 문화의 변동을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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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